나에게는 동갑내기 사촌이 하나 있다. 엄밀히 나보다 오빠지만 같은 학년으로 컸단 핑계로 한 번도 오빠라고 부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혼 전에는 명절은 물론, 명절이 아니어도 우리끼리 간간히 만나 밥 먹고 노닥거리곤 했었다. 동갑이니 비슷한 시기에 취업하고 서로 소개팅도 주거니 받거니하며 (서로 소개해 준 사람이랑은 잘 안됐음ㅋㅋ) 비슷한 때 애인이 생겼고 연애하고 몇 달 간격으로 결혼도 했다.
뭐 흔히 대는 핑계로 사느라 바빠 연락도 뜸해지고 코로나라 가족모임도 못해서 얼굴 본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엄마를 통해 들은 근황은 가히 놀라웠다. 처음엔 2세 같은 축하할 일이 생긴 줄 알았는데 듣고 보니 심각한 일이었다.
우리가 막 취업해서 돈을 모으기 시작한 사회초년생 신분일 때, 대략 사회생활 2~3년차 즈음이었던 것 같다. 카페에서 수다 떨다 서로 돈 관리 어떻게 하는지 어디에 투자하는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고 했고, 사촌은 아는 자산관리사에게 운용을 맡기고 있다고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을 못 믿기 때문에 부모님에게도 내 돈을 맡긴 적이 없다. 그 자산관리사는 믿을만한 사람인 건지, 위험하지 않겠냐고 물었고, 사촌은 친형에게 소개받은 사람인데 형제 모두 그 자산관리사에게 맡겨 두었고 수익률이 꽤 괜찮아서 믿고 계속 맡기는 중이라고 했다.
이 이후 각자의 연애사가 파란만장하여 만나도 재테크 이야기를 할 겨를은 없었고 이런 대화를 나눴다는 것조차 아예 잊고 있었다. 엄마가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결혼하고 내집마련을 계획하며 그 자산관리사에게 맡긴 돈을 인출하고 싶다고 했는데,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투자로 다 까먹은 것 같았다.
사촌은 SKY 대학, 대학원까지 졸업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 중 한 곳에 재직 중이다. 대기업이니 당연히 급여도 괜찮겠지만, 많이 번다고 절대 돈을 막 쓰는 타입이 아니다. 나는 사촌이 그간 아끼고 열심히 모았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어 더 쓰라리게 느껴졌다. 그가 얼마를 넣었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 몇천만 원~1억 원은 되지 않을까 추측할 뿐.
왜 자기 돈 관리를 남에게 맡길까? 여기서 남은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 부모님, 형제자매, 배우자도 포함이다.
주변에 물어보면 의외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해 방송인 박수홍의 사례도 비슷한 사례 중 하나다. 버는 돈은 전부 부모님께 위임하는.
힘들게 번 돈일수록 잘 관리해서 불려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누구에게나 같을 터인데 타인을 잘 믿지 않는 나로선 이해되지 않는 심리인데,
1. 어렵고 하기 싫은 걸 미루고 싶은 마음
2. 현업이 힘들어 다른 곳에 신경 쓸 에너지가 없음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제발 돈 관리 남에게 맡기지 말라고 설파하고 다니지만, 슬프게도 사람이 살면서 돈과 관련된 큰 손해는 한 번씩 겪는 것 같다. 모쪼록 원금만이라도 회수되길 바란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상이몽: 사실은 배우자가 반대했다는 걸 알았을 때 (0) | 2022.05.30 |
|---|---|
| 가상화폐는 훼이크다 (0) | 2022.05.21 |
| 타인의 결혼생활 (0) | 2022.04.23 |
| 둔촌주공과 우리집 (0) | 2022.04.14 |
| FOMO를 느낄 때 대처법 (0) | 2022.04.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