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헤드헌터에게 전화가 왔다. 결과는 합격. 면접관이 나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이번 면접은 망한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 면접관 성향이 원래 길게 질문 안 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간 봐온 면접관 중 가장 특이했다. 옛날 알바 면접 때에도 이런 점장님이 있었는데 그런 스타일인가보다.
이제 처우협의 연봉협상을 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과거 나는 이직 연봉협상에 실패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대리일 때였다. 새 회사에서는 연봉인상률 10%를 제시했다. 나는 10%는 이직할 때 당연히 올려야 하는 범위라 메리트가 없고 15%는 되어야 입사할 수 있다고 했다. 고작 10% 올리려고 이직하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화를 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연봉 4300만원은 달라고 우겼다.
그 회사측에서는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10%가 최선이라고 했다. 객관적으로 작은 회사치고 복지는 괜찮았으나(연1회 가족 포함 건강검진, 매월 1회 패밀리데이, 교육비 지원 등) 위치가 멀어 나도 거절했다.
하여 이번엔 연봉협상에 꼭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 회사는 아직 사내규정이나 복지가 자리잡지 않아 식대 20만원 비과세 외에는 다른 수당이 아무것도 없었다. 면접관도 건강검진이나 자녀교육비 지원이 없으니 연봉에 잘 녹이라고 말했을 정도니. 기본급+인센 100% 이상 이게 전부다.
헤드헌터는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의 급여명세서, 명절 상여가 있는 달의 급여명세서, 전년도 원천징수영수증, 올해 연봉계약서 제출을 요구했다.
연봉협상이 인상률(%)로 이야기하다 보니, 현재 연봉이 적으면 불리하다. 5천만원에서 10% 올리는 것과 1억원에서 10% 올리는 것은 같은 10%여도 결과값은 각각 500만원, 1천만원으로 완전히 다른 숫자니까.
머리를 굴려 온갖 현금성 복지를 다 끄집어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생일축하금 10만원까지도 말했다. 과거 보너스를 많이 받은 해의 성과급에 대해서도 언급했더니 헤헌은 반영되도록 노력해 보겠다며 해당 년도의 원천징수영수증도 보내달라고 했다. 헤헌은 회사측에서 영끌연봉이 아닌 기본급 기준으로 이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간 연락했던 헤헌이 아닌 같은 회사의 이사였다. 갑자기 왜 다른 사람이 연락을 주지? 의아했는데 그들의 영업전략이란 걸 이내 알았다.
이사는 면접 때 내가 당황스러웠을 거라고, 면접관이 성향이 조금은 무뚝뚝한 편이고 미리 이력서를 보고 어느 정도 마음을 정해놓고 면접에서는 생각한 부분이 맞는지만 검증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 포지션으로 총 5명이 면접을 봤는데, 다른 면접자들은 나보다 더 면접시간이 짧았다고 했다. 난 경쟁자 2명 정도로 예상했는데 5대1이면 의외로 치열했네.
어제 다른 헤헌과 말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자꾸만 떠보는 말을 했다. 같은 얘기 또 하려니 귀찮았고 내가 진짜로 이직의사가 있는지를 여러 차례 캐물었다.
나는 연봉이 가장 중요한데, 회사측은 입사 날짜가 중요한 것 같아 보인다. 막말로 20% 올려주면 입사날짜쯤이야 무조건 원하는대로 맞춰 줄 수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솔직한 마음은 최저 인상률 10%여도 이직할 생각이긴 한데, 내 패를 다 오픈하는 건 좋지 않다. 헤헌은 내 사정을 알지만, 나는 회사 상황을 하나도 모른다. 완전 정보의 비대칭. 그래서 다소 과장해서 말했다. 내가 현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했고 후임이 없는 만큼 회사에서 분명 붙잡으려 들 거라고.
다른 동료들이 이직을 놓고 저울질하며 연봉협상을 새로 하곤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사는 얼마 정도 차이면 스테이 할지, 얼마 정도면 확고한 마음으로 이직할 것인지를 물었다. 100만원 차이면 이직하고 300만원 이상 차이나면 스테이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업계가 호황이다 보니 이렇게 처우협상 다 해놓고 처우가 더 좋은 다른 회사로 가거나, 입사일이 멀면 그 사이 다른 곳 면접 봐서 결정해버리는 경우가 왕왕있나보다. 오퍼레터 받은 후에는 번복할 수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리고 계약연봉만 인정되지 현금성복지는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밑밥을 깔며 전화를 끊었다.

헤드헌터를 통한 이직준비의 장단점은 명확했다.
장점은 공채, 수시채용에 비해 서류 통과율이 높아 면접 가기가 한결 수월하다. 실전에 강한 사람이라면 헤드헌터를 활용하는 게 좋다. 단점은 헤헌이 내 가치를 후려치려 든다는 점이다 지가뭔데. 내 연봉 깎는 것이 그들의 kpi니 십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기분이 매우 별로다.
아침부터 치열한 밀땅을 했더니 영 불편했다. 혈압이 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트를 펴고 계산기를 놓고 하루 종일 두드리며 시나리오를 썼다. 전화로 얘기하니까 헤헌에게 말빨이 말릴 가능성이 있어 행여나 헛소리 하지 않도록 정리해 두었다. 최저치 제안의 경우, 중간값 제안의 경우 뭐라 답할지. 퇴근시간 가까워서야 이사에게 답이 왔다.
내가 희망한 금액은 17% 인상.
회사측 제시는 14%인상, 그리고 차장 직급.
최악의 상황 11% 인상을 가정했던 터라 회사측 제시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차장 직급까지는 필요 없어서 의아했으나 묻진 않았다.
식대를 따로 받을 수 없냐고 이사에게 물었더니 지금 재직 중인 곳도 연봉에 식대 포함이지 않냐며 커트당했다. 이래서 현재 연봉이 겁나 중요하다. 그 외 다른 복지(건강검진비, 교육비)도 말해봤지만 답은 같았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챙겨야 하는데.
밤에 차분히 회신을 썼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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